이상근 삼영물류 대표이사

 

2025년 오사카 유메시마 섬, 거대한 인공섬 위에 세워진 엑스포장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미래 도시였다. 구름처럼 솟은 파빌리온 사이로 사람들은 몰려들고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 공간이 있었다. ‘퓨처시티 파빌리온’. 필자는 그곳에서 도시의 삶을 바꾸는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연결하는 스마트 물류의 설계도를 마주했다. 수소로 움직이는 운송선, 스스로 길을 찾는 물류 로봇, 그리고 아바타로 들어간 가상 미래 도시(Virtual Mirai City). 그곳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Society 5.0’이라는 일본의 미래 전략을 압축해 놓은 하나의 실험장이었다.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EXPO 2025 OSAKA, KANSAI, JAPAN)는 체험을 통해 물류가 단순한 ‘운송’을 넘어 미래 사회의 기반 인프라로 어떻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기술은 도시를 어떻게 바꾸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의 어디쯤에 서 있는가?

▲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공식 홍보 포스터. ‘Towards a brighter future for all’, 이 슬로건은 단지 기술 진보가 아닌, 포용성·지속가능성·공존의 가치를 담은 미래를 함께 설계하자는 국제 사회의 약속을 뜻한다.

▲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공식 홍보 포스터. ‘Towards a brighter future for all’, 이 슬로건은 단지 기술 진보가 아닌, 포용성·지속가능성·공존의 가치를 담은 미래를 함께 설계하자는 국제 사회의 약속을 뜻한다.

도시에 스며든 물류, 그리고 기술
퓨처시티 파빌리온의 전시관 중 ‘Mobility & Logistics Zone’에 들어선 순간, 필자가 마주한 첫 장면은 주행 중 실시간으로 경로를 조정하는 자율 물류 차량의 시연 영상이었다. 히타치가 개발한 이 시스템은 도심 내 수요 예측, 교통 흐름 분석, 보행자 밀집도까지 고려하여 최적화된 물류 이동을 실현하고 있었다. 물류는 더 이상 외곽의 창고에서 출발해 도시를 통과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도시의 수많은 노드(가정, 점포, 병원, 소형 거점창고 등) 사이를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인프라의 데이터를 읽으며 스스로 움직이는 도시의 내부 순환체계가 되고 있었다. 또 다른 전시는 드론 기반의 라스트마일 배송 시뮬레이션이었다. 자율비행을 통해 저소득층 고립지역, 고령자 밀집지역으로 긴급 식료품이나 의약품을 전달하는 모델이었다. 물류는 단지 편리함이 아니라, 도시 내 복지의 수단, 생존의 도구로 확장되고 있었다. 기술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었다. 관람자들이 직접 인터페이스를 조작하고, 상황별 시나리오에 따라 물류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체험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 모든 전시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물류는 도시 인프라의 중심이며, 데이터가 그 심장을 움직인다.”

가상도시에서 실험된 Society 5.0
“당신이 만약 시장이라면 어떤 물류 전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가상 미래 도시(Virtual Mirai City)의 입장 화면은 단순한 디지털 공간이 아님을 암시했다. 필자는 아바타를 설정하고 KDDI와 히타치가 공동 개발한 메타버스 기반의 미래 도시로 들어갔다. 이름도 위치도 없는 이 도시의 거리는 깔끔했고, 건물 사이로 자율주행 차량과 드론, 그리고 배송 로봇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가상도시의 중심에는 ‘데이터 허브’가 있었고 이곳에서 수집된 시민의 위치, 건강 상태, 구매 패턴, 교통 흐름, 기후 정보 등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어 처리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 물류 차량은 정해진 스케줄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판단하며 움직였다. 가상도시 내에는 ‘미라이 시어터(Mirai Theater)’라는 특별 체험관도 있었다.

▲ 체험형 콘텐츠인 ‘Mirai Arcade(미래 아케이드)’ 부스. Mirai Arcade는 단순한 오락 공간이 아닌,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참여형 시뮬레이션 체험’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참가자는 게임을 통해 미래 문제를 체감하고 직접 해법을 선택한다.

▲ 체험형 콘텐츠인 ‘Mirai Arcade(미래 아케이드)’ 부스. Mirai Arcade는 단순한 오락 공간이 아닌,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참여형 시뮬레이션 체험’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참가자는 게임을 통해 미래 문제를 체감하고 직접 해법을 선택한다.

이곳에서는 사용자가 직접 정책을 선택하고 도시의 지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시각화된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다. 에너지 소비량, 물류 탄소 배출량, 시민 건강 지수, 긴급 대응 속도 등이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정책 결정과 물류 인프라 사이의 인과관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체험을 통해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Society 5.0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기술 구조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물류는 단순한 인프라가 아닌, ‘사회적 안전망’으로 설계되고 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런 연결이 아직 낯설지만 가상공간 속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었다. 아바타를 통해 도시에 ‘참여’하고, 알고리즘과 ‘협력’하고, 시스템을 ‘수정’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엑스포는 미래기술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시민 스스로가 미래를 ‘디자인’하게 만드는 체험형 학습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결국 이 가상 미래 도시는 기술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형 기술 설계라는 Society 5.0의 철학을 가장 실감 나게 구현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물류는 조용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어트랙션 속의 메시지들
퓨처시티 파빌리온의 전시관은 단순히 보거나 듣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 설치된 15개의 미래 체험 어트랙션은 모두 사용자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반응하고 결과를 보여주는 인터랙티브 시뮬레이션 플랫폼이었다. 각 체험은 하나의 도시 문제를 설정하고 이를 ‘기술로 해결하는 과정’을 게임처럼 설계해 놓았다. 또 다른 부스인 ‘Emergency City Response’에서는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상황을 가정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식수·약품·전력 배터리를 가장 먼저 공급해야 할 지역을 판단해 드론과 수소 트럭을 배분하는 체험이 진행되었다. 배송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하면 생존율은 떨어지고 도시 불만 지수가 상승했다. 하지만 적절한 대응을 할 경우, 의료와 안전망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회복탄력적 물류 모델’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어트랙션들 속 공통점은 기술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체험자는 단지 기술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도시 운영의 난제를 함께 고려해야 했다. 일부 전시에서는 물류와 복지의 결합이라는 주제가 전면에 나왔다. ‘라스트마일 복지 챌린지’라는 체험형 콘텐츠에서는, 고령자와 장애인 비율이 높은 도시 구역을 대상으로 방문형 서비스 로봇과 자율차를 이용한 복합배송 모델을 설계해야 했다. 물류 효율성만을 추구하면 배송 루트는 최적화되지만, 복지 점수는 낮게 나왔다. 반대로, 비효율이 있더라도 배려 기반의 접근을 택하면 시민 만족도와 사회 통합 지수는 높아졌다. 결국 이 모든 어트랙션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미래의 도시 문제는 기술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다. 통합적인 사고, 시민 참여, 사회적 감수성을 갖춘 설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물류가 있었다. 단지 물건을 옮기는 ‘이동’이 아닌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는 인프라이자 시스템, 그리고 때로는 생존과 생명의 경계를 가르는 사회적 기회 구조로서의 물류. 퓨처시티 파빌리온은 그 조용한 진실을 15개의 체험 속에 빼곡히 숨겨놓고 있었다. 직접 조작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선택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 진실을. 이 체험들은 모두 Society 5.0이 꿈꾸는 ‘기술로 더 따뜻한 사회 만들기’라는 대전제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 효율성과 정시성은 기본, 포용성과 접근성, 회복탄력성이 물류 설계의 중요한 변수로 다뤄지는 것이다.

▲ 퓨처시티 파빌리온(Future City Pavilion)의 주제 슬로건, ‘To the city of happiness’.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나 도시 인프라 개선을 넘어, 기술과 도시 설계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 퓨처시티 파빌리온(Future City Pavilion)의 주제 슬로건, ‘To the city of happiness’.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나 도시 인프라 개선을 넘어, 기술과 도시 설계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엑스포가 우리에게 남긴 것
엑스포는 언제나 ‘가능성의 축제’였다. 기술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달랐다. 이번 엑스포는 가능성만을 말하지 않았다. “이미 도달 가능한 미래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다. 특히 퓨처시티 파빌리온과 가상 미래 도시는 단순한 전시관이나 홍보관이 아니었다. 그곳은 도시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로 시뮬레이션하고 시민 스스로 해법을 탐색하는 정책적 실험장, 또는 사회적 프로토 타입 공간이었다. 스마트 물류는 이 실험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했다. 이동, 전달, 연결의 물리적 기능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의 대응 능력과 회복탄력성을 구조화하는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일본이 엑스포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 ‘Society 5.0’은 단지 AI나 IoT의 활용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 중심으로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배치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은 물류와 공급망 설계 방식에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류 효율성이 사회적 형평성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공지능이 판단하는 물류 경로에, 윤리와 배려는 어떻게 삽입할 수 있을까?”
“데이터 기반 물류 시스템이 시민 개개인의 삶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것이 아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인구구조와 도시구조가 급변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는 이제 ‘기술 중심’이 아니라 ‘사회 중심’의 물류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엑스포는 우리에게 그 미래를 상상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직접 걸어보라고, 체험해보라고, 그리고 참여하라고 말했다. 바로 그 점에서, 2025 오사카 엑스포는 물류인에게, 정책가에게, 기술자에게, 그리고 시민 모두에게 가장 현실적이고도 도전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 BLUE OCEAN DOME은 엑스포의 핵심 주제인 “Designing Future Society for Our Lives”에 맞춰 해양 환경 보호와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를 주제로 한 전시관으로, 강한 시각적 상징성과 지속가능성을 갖춘 공간이다.

▲ BLUE OCEAN DOME은 엑스포의 핵심 주제인 “Designing Future Society for Our Lives”에 맞춰 해양 환경 보호와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를 주제로 한 전시관으로, 강한 시각적 상징성과 지속가능성을 갖춘 공간이다.

기술은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 물류가 바꾸는 도시의 미래
2025 오사카 엑스포는 단지 최첨단 기술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기술을 어떤 철학 위에 놓을 것인가, 누구를 위해 설계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작동시킬 것인가를 묻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물류’가 있었다는 것은 작지 않은 상징이었다. 물류는 가장 기술적인 산업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사람 가까이에 있는 시스템이다. 식탁에 놓인 음식, 약국에 들어온 의약품, 재난 뒤 도착한 긴급 보급품.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물류이며 그것은 인공지능이나 드론보다 먼저 도시를 움직이는 생체 순환계다. 퓨처시티 파빌리온과 가상 미래 도시 체험은 물류를 이동의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도시의 건강을 유지하고 사회의 복지 수준을 조율하는 인프라’로서 물류를 새롭게 위치시켰다. 이동의 효율성만이 아니라 접근성, 회복력, 포용성이라는 지표가 함께 고려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스마트 물류’ 담론을 넘어서는 철학적 전환이었다. 결국 엑스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했다.
“기술은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물류는 그 삶을 지탱하는 일상의 구조다.”
Society 5.0은 단지 기술적 사회의 미래상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존엄’과 ‘지속가능한 사회 구조’를 위해 기술이 봉사하는 구조이며 그 속에서 물류는 ‘연결을 설계하는 공공 기술’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단지 더 빠르고 정확한 물류를 넘어서 더 인간적인 물류, 더 따뜻한 연결, 더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설계하는 것이다. 오사카 엑스포는 그것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상상력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가장 절실히 회복해야 할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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