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은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2010년. 한마디로 ‘한국은 글로벌 약진의 해 vs 일본은 충격의 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충격이란 다름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의 뇌리를 때린 한국기업의 존재감의 강도와 크기였다.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붕괴 수습으로 산업의 디지털화 기회를 놓치고 있었을 시기에 한국은 정보통신(IT)과 전통제조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그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져 자동차, 스마트폰, 전자, 철강. 조선 등의 분야에서 일본추월의 위협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미국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기업에 한국기업이 14사가 선정되며 그중 최고 순위가 2000년 92위에서 2010년 22위로 뛰어오르며 아마도 가장 충격을 받은 국가가 일본이었으리라는 것을 필자는 현지에서 체감할 수가 있었다. 당시의 일본 유명 비지니스저널 표지에는 ‘현대, 삼성, LG, POSCO’를 한국의 사천왕으로 선정하고 ‘각 기업의 약진과 최강의 비밀’ 등의 표제로 일본 최고급 전문가들의 기업해부, 분석으로 도색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본 최강 ‘Toyota’그룹 핵심인재 한국 벤치마킹 대표단 파견
일본발 글로벌 Top Toyota역시 이 상황을 앉아서 간과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까지는 일본 글로벌 기업들은 오로지 정면에 ‘미국’을, 옆으로는 ‘유럽’, 뒤로는 ‘중국’시장에만 전념했으며 ‘한국’이란 존재는 아무런 경쟁대상도, 마켓이라는 인식조차도 없었으며 그저 자기네(일본)들을 모방하기에 급급한 값싸고 2류 품질의 후발주자정도로만 여기는 내면 깊은 우월주의를 품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 필자가 현지에서 느꼈던 솔직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2012년 4월, Toyota 본거지인 일본 중부지역에서 일본 생산성본부 내 IE협회주관으로 ‘한국배우기’를 위해 Toyota그룹사 임원과 TPS 탄생부서인 생산조사실 실장을 필두로 그룹 핵심인재들이 벤치마킹 대표단을 구성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는 일본의 근대산업사속에서 일본 리더기업이 ‘한국배우기’를 위해 직접 공식 방한한 사례는 처음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3박 4일 일정으로 아산현대자동차공장과 주요협력업체, 오산 LG디스플레이 공장(당시), 인천시장 접견 및 투자유치회 등을 거쳐 한국의 제조현장과 개발현장을 답사하였으나, 삼성은 오픈을 해 주지 않아 현장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필자는 본 대표단의 수행통역을 의뢰받아, 전일정을 동행하였기에 수행자 입장에서 대표단들의 일거수일투족, 표정 하나하나를 직접 읽고 공감할 수가 있었다. 특히, 현대자동차현장 라인과 LG의 자동화수준과 규모 앞에서 마치 ‘내가 아는 한국이 이럴리가 없는데’라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 표정들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게 일본 대표단은 방문 기업마다 본연의 예의를 정중히 갖추었지만 모두가 깊은 생각과 침묵에 빠진 분의기로 귀국하게 되었다. 필자에게 있어 본 방한 일정 수행경험은 상술하였듯이 한일 근대 산업사에 있어 역사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순간을 직접 체험했다는 의미와 한국기업의 저력과 쾌거를 일본 대표기업 측에 서서 직접 체득한 자부심의 가치는 필자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벤치마킹 보고회 결과는 의외, 그러나 정곡을 찌르다
‘한국배우기’ 벤치마킹 대표단의 일본 귀국 후, 한 달 후 즈음에 나고야 시내 모호텔에서 공식보고회가 수 백명의 관계자들의 참석하에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필자도 관계자의 일원으로서 초청을 받았는데 귀중한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대체 어떤 내용이 보고될지 진심으로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보고결과는 뭔가 대단한 전략적 표현이 등장할 줄 알았으나 필자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동시에 일본기업의 취약점이 정확히 파악된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배우기’ 방한 벤치마킹 시점으로 사전조사와 벤치마킹대표단 각각의 보고서를 취합한 사후조사를 종합한 결과는 의외로 일본기업이 한국기업에서 배울점은 단 한 가지 ‘삼성의 지역전문가제도’로 단정지었던 것이다. 삼성의 ‘지역전문가제도’는 글로벌화 흐름에 맞춰 1990년 도입한 입사 3년차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도록 지원하는 자율관리형 해외연수프로그램이다. 2025년 현재까지 이 제도를 통해 세계 80여 개국, 3,602명의 지역전문가를 양성했다고 삼성의 공식홈페이지에 공표되어 있다. 필자도 삼성그룹 인사팀과의 인재연수협업 경험에서 ‘지역전문가제도’의 존재는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그 가치의 비중까지는 체감하지 못하였는데 Toyota의 보고결과를 듣고 그간 조각조각 흩어졌던 궁금점의 퍼즐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국가를 불문하고 그 산업현장과 경영관리현장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모를리 없으며 또한 Toyota만큼 우직하게 종신고용형 ‘인재육성’에 힘쓰는 기업도 흔지 않다. 그런 글로벌 Top인 Toyota가 한국기업에게 부러운 단 하나의 벤치마킹 포인트가 삼성의 ‘인재육성프로그램(=시쿠미)’이라고 공식선언한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동시에 정곡을 찌르는 단순명쾌한 답이기에 충분했다. Toyota정도의 기업에 ‘인재’가 없겠는가? 자본, 기술, 전략, 전술이 부족하겠는가? 그러나 인재제일주의 경영의 Toyota에 있어서는 ‘지역전문가’와 같이 현지에서 현지인과 소통하며 그들의 니즈를 제품개발로 직결시킬 수 있는 역량 있는 인재가 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글로벌 한국기업의 경쟁력 원천의 새로운 관점
Toyota는 13년 전 방한대표단이 도출한 한국배우기의 답을 통해 반대로 우리기업에게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핵심 경쟁력 원천의 해답을 직접 던져준 것이다. 즉, 한국기업의 글로벌 약진 비결은 바로 ‘인재’에 있다고 말이다. IT기술, 스마트폰,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분야는 달라도 그 공통분모에는 ‘인재’가 있다고 말해준 것이다. ‘인재’라는 용어는 한국과 일본도 동일하지만 ‘한글 vs 일본어’ 어느 언어의 문자 정보력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제품개발 스피드와 마케팅의 위력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인재양성을 위해 투자한 돈 문제도, 전략문제나 교육품질문제도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품고 태어난 모국어의 위력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일본 대표기업이 이를 감지를 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국어가 바뀌겠는가? 한국의 경쟁력 삼총사인 ‘의사결정의 스피드, 선택과 집중, 과감한 투자’는 많은 전문가들이 가장 무난하게 단언하는 분석결과이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기업은 오너 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분명한 강점이자 또한 약점이다. 한편, 전문경영인 중 과연 몇 명이 본인자리를 걸고 리스크를 감수하며 선택한 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스피드 있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확신이 있다면 오너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인재’는 확실한 핵심 경영자원이자 글로벌 경쟁력 원천임은 검증되었다고 하겠다.
끝으로, 삼성의 ‘지역전문가제도’가 Toyota가 위협을 느끼는 핵심경쟁력이라면 모든 일본기업은 한글을 구사하는 모든 우리나라 기업을 위협으로 여긴다는 말과 동일하다. 또한 삼성의 인재양성 성공체험은 모방이 아닌 응용측면에서 모든 한국기업도 가능하다는 논리가 된다. 한국의 일본 벤치마킹도 유효하다. 동시에 눈을 돌려 국내 삼성의 인재육성 벤치마킹도 추천해 본다. 모국어의 ‘문자정보력’을 기업가치 창출로 승화 가능한 창조적 글로벌 인재는 한국인이라면 전원보유하고 있는 불변의 무한경쟁 원천이라는 관점에 특별한 이의가 있겠는가? 제2, 제3의 고유한 ‘지역전문가제도’가 각 기업에서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