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글로벌 경영자원으로서의 ‘한글’
‘사무교푸사루’라는 일본에서 흔한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단어를 주변 관광오신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면 100% 알아듣고 군침 도는 표정을 보여줄 것이다. ‘사무교푸사루=삼겹살’이다. ‘삼(사무) 겹(교푸) 살(사루)’인 것이다. 어쩌다 일본어가 이럴 수 있는지는 차차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은 필자 역시 어릴 때부터 들어와 머리 속에 충분히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우수하다는 감동도 피부에 와 닿지도 않고 왠지 자화자찬 같은 느낌도 들어 식상함과 거부감마저 든 적이 있었다. 필자가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지금도 그랬을 것 같다. 필자부터 우리 언어의 우수성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본다. 필자는 ‘한글’의 언어학적 우수성에 준거하여 경영학 전략론적 관점에서도 결정적 경영자원임을 깨닫게 되는 경험이 있었다(후편에 상세설명). 글로벌 무대에서 적어도 한국이 일본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던 숨은 공신이 ‘한글’이라는 관점은 아마도 처음 접할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이 관점을 분석한 미공개 논문을 한편 가지고 있는데, 본 연재에서 왜 ‘한글’이 주요한 글로벌 경영 자원인지에 관해 간단히 논문개요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한글’에게 묻는다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한국어를 배우는 어느 외국인 학생이 당신에게 ‘소리를 문자로 표기 가능한 한글 글자가 몇 개나 되나요?’하고 물어온다면 한국인으로서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면 ‘가’, ‘나’, ‘다’부터 ‘콸’, ‘펑’, ‘욱’, ‘웩’처럼 어떠한 소리를 듣고서 그 소리를 문자로 전환 가능한 글자가 총 몇 개냐는 의미다. 필자는 활동 관계상 한국기업인 단체연수단과 만날 기회가 많아 이 질문을 자주 던진다. 아쉽게도 즉각 정답을 맞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실은 정답을 확인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문자에 대한 인지가 없음을 자극해보고자 한 의도였다. 인지가 없음은 당연하다.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그냥 성장환경에서 무의식으로 습득되어 객관적 인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한국 내에서 살 경우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필자 역시 논문이 아니었다면 굳이 알 필요가 없었거나 잡학수준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한글이 문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하나의 자음과 하나의 모음이 조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게다가 ‘받침’까지 곁들여지는 것이 한글이다. 그러면 자음과 모음이 곱해진 수와 받침까지 더해지면 정답은 금세 알 수 있다. 정답은 무려 11,172개이다. 대폭 할인해서 ’10,000개’라고 하자. 이 ’10,000개’의 문자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일본어가 증명해 주고 있다.
같은 질문을 ‘일본어’에 물었다
똑같은 질문을 일본인에게 묻는다. 참고로 필자는 30년 이상 통역을 하고 논문을 일본어로 쓰고 일본대학에서 일본어로 경영학 수업을 하고 일본어로 한국어도 가르쳐봤으니 양국 언어는 그나마 명함은 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소리를 문자로 전환 가능한 글자, 한글은 퉁쳐서 ‘10,000개’, 과연 일본어는? 놀라지 마시라! 고작 ‘108개’에 불과하다.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계산하면 ‘10,000 vs 100’ 즉, 100배라는 말이다. 이는 소리를 문자로 전환 가능한 정보용량이 100배 차이가 난다는 의미이다. 한글은 자음모음의 ‘조합’을 통해 수많은 문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본문자는 ‘독립형’이다. ‘아리가또’의 ‘아’의 경우 ‘あ(아)’라는 하나의 문자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 이 팩트를 이야기했을 때, 한국 사람들은 믿지 못하는 얼굴로 ‘일본어도 한 국가의 언어인데 무슨 100배나 차이가 날까?’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다. 좋다. 한글모음 ‘ㅐ·ㅔ’, ‘ㅒ·ㅖ’는 표기는 달라도 발음은 동일하니 빼주기로 하고, 받침 ‘ㄱ·ㅋ·ㄲ’, ‘ㅂ·ㅍ’, ‘ㅅ·ㅈ·ㅊ·ㅌ·ㅎ’ 등 역시 동일발음이라 빼주고 해서 이것저것 다 빼주더라도 ‘약 6,000개 이상’의 소리를 문자로 표기할 수 있다. 반면, 일본어 이것저것 다 조합하고 붙여서 3배 더 부풀도 ‘300개’. 개량된 단순계산 ‘20배’이다. 물론 언어학 관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경영학 관점에서는 더 이상의 논쟁에 의미는 없을 듯하다. 본 연재에서는 설명의 단순화를 위해 ’100배’를 선택하기로 한다.
’10,000 vs 100’이 낳은 현실
앞서 언급한 ‘사무교푸사루’의 기억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사무교푸사루’를 듣고 ‘삼겹살’임을 금세 유추해 알아차렸다면 당신은 천재일지 모른다. 그뿐이겠는가? ‘김치→키무치’, ‘맥도널도→마쿠도나루도’, ‘러닝머신→란닝구 마신’, ‘호텔→호테루’, ‘마더(Mother)→마자’, ‘파더(Father)→화자’, ‘브라더(Brother)→부라자’로 둔갑이 되고 만다. 이처럼, ‘삼겹살’이라는 소리정보는 일본어가 상호 소통 가능한 문자정보로 지극히 제한되어있다는 알기 쉬운 사례이다. 일본어에는 받침을 표기할 문자가 고작 ‘ん(ㅇ, ㄴ)’뿐이다. 즉, ‘ㄱ, ㅁ, ㅂ, ㄹ’의 받침을 표기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삼겹살’에는 ‘삼의 ㅁ’, ‘겹의 ㅂ’, ‘살의 ㄹ’이 없으니, ‘사무’, ‘교푸’, ‘사루’로 되는 것이다. 게다가 모음에는 ‘ㅓ’가 존재하지 않는다. ‘ㅓ’가 없으니 당연히 ‘ㅕ. ㅝ’도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태어나 성장과정에서 받침을 써본적이 없어 ‘ㄱ, ㅁ, ㅂ, ㄹ’ 받침이 있는 발음을 할 수 없는 음성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어를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으며 팩트만을 서술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중에서도 ‘ㄹ’받침의 부재는 일본인의 외국어 학습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다. 필자의 경험으로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우는 기간과 노력을 ‘1’로 보았을 때, 일본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기간과 노력은 최소한 ‘4’ 또는 그 이상. 즉, 4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며, 그 대부분의 벽은 한글 발음에 있다. 4배 이상은 포기 대상들이다. 일본인이 영어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의 근본 원인이 극도로 축소시킨 ‘문자’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반면, 한국 사람이 외국어 수용 역량이 높은 이유도 동일하다. 이는 곧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되는 맥락이기도 하다.
’10,000 vs 100’이 왜 글로벌 경영자원인가?
필자는 논문에서 소리를 ‘음성정보’, 글자를 ‘문자정보’라고 표현을 달리하고 소리를 글자로 전환하는 것을 ‘음성정보를 문자정보로 전환’하는 ‘정보처리’라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정보처리용량’을 한국어와 일본어가 100배 차이가 난다는 프레임을 구축하여 이 차이가 글로벌 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과 경쟁력 차이의 결정요소 중 하나라는 가설을 설정한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동일한 제3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동시에 진출했다고 가정하자. 양국기업 모두 제3국의 언어는 모르는 상태이며 그 나라에서 미래 고객이 필요로 하는 니즈를 파악해서 신속하게 제품개발 후 투입시켜 그 시장을 선점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때 제3국의 영향력 있는 고객후보가 보디랭귀지와 더불어 그 나라 발음으로 ‘뻘험커’가 필요하니 만들어주면 사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나라 문자는 몰라도 ‘뻘험커’라 발음해서 통하는 걸 확인하고 즉각 본사 제품개발팀에게 메일이나 카톡을 통해 ‘뻘험커’라는 제품사양에 관한 ‘문자정보’을 송신하고 사양 검증 후 제조에 착수하게 되는 상상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뻘험커’라는 발음은 이미 관계자 모두 공유되었고 이미 발음하고 문자로 공유가 끝나는 상황이다. 한편 일본기업 담당자도 ‘뻘험커’라는 발음의 흉내는 냈으나 문제는 ‘문자정보로의 전환’의 벽에 부딪힌다. 일본문자로는 ‘뻘, 험, 커 = 포루, 호무, 코’. 그 순간 정보공유는 단절되어 버리며, 발음은 커녕 문자공유는 그저 희망사항으로 끝이 나 버리는 상황이다. 게다가 1년 후, 양국의 후임자들이 다시 제3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기업 후임자는 현지 고객과 첫 만남에서도 함께 신제품을 만져보고 ‘오~~뻘험커!’하며 다음 제품개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동안, 일본 후임자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이 실제 일어나고 있다. 즉, 제3국의 미지의 고객과 최단시간에 ‘通’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Made in Japan. 만들기만 하면 날개달린 듯 팔리는 시대는 끝이 났다. ‘한글’이라는 ‘문자정보’의 존재는 삼성과 LG와 같은 한국기업이 글로벌 제품 개발력과 마케팅을 가능케 해준 숨은 공신이라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전략, 기술, 고객의 선호 등은 시시각각 변한다. 반면, ‘한글’이 내포하고 있는 ‘문자정보력’은 일본이 절대로 보유할 수 없는 불변의 경쟁력 자원인 것이다.
다음호에서는, ‘한글/한국어’가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관점이 탄생한 계기와 과정을 중심으로 일본이 두려워하는 한국기업 및 한국인의 혁신성에 대해 그 속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